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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현1-기도제목 나누기
작성자 : ccmlove (ccmlove) 작성일 : 2009-09-30 

 
표현 (1)-기도제목 나누기


철수의 엄마는 듣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해녀랍니다.
그렇게 어렵게 오형제를 키운
엄마를 철수는 사랑합니다.
수화도 모르는 엄마이기에
온몸과 숨소리로 말했답니다.

어느 날 철수는 책방에 들러
한글공부 그림책 사가지고는
글씨와 그림을 보여드리며
신나게 하나 둘 가르쳤는데

철수가 엄마에게 하고 싶던 말
사랑이란 단어 위에 떨렁 그려진
하트모양 그것을 설명하려다
너무너무 어려워 울었습니다.
너무너무 속상해 울었습니다.
-이길승, ‘철수 엄마’-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표현'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 처음으로 이길승의 '철수 엄마'로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철수의 문제는 엄마에게 ‘사랑’이라는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지시대상이 있는 것은 그냥 가리키기만 해도 되지만 ‘사랑’은 지시대상이 없습니다. 게다가 철수가 엄마에게 보여준 그림책에는 ‘사랑’의 그림 대신 어이없는 하트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감정, 생각과 같은 추상적인 대상들은 참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철수는 엄마에게 ‘사랑’을 설명하기가 어려워 울었겠지만, 그 책을 만든 사람의 고충도 이해가 됩니다. 오죽하면 거기에 하트 그림만 떨렁 그려놨을까요?

경우가 좀 다르겠지만, 보통 남자들은 여자가 느닷없이 화를 내는 경우를 참 난감해합니다. 화가 난 이유도 말하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지만 실은 여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로 잘 풀어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말을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에 담고 있을 때는 참 화가 나는 일인데 막상 말로 표현하면 그 감정이 그대로 언어로 전달이 되지 않아 오히려 구차하게 들리게 되니까요. 원래 감정이라는 것이 한 가지 이유로만 생기는 것이 아닌데 막상 말로 옮기면 그 다양한 이유들을 다 담을 수가 없거든요. 여자의 이유를 들은 남자들은 겨우 그깟 일로 화를 내냐는 표정을 지으며 건성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는 귀찮은 듯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버립니다. 이런 경우를 몇 번 경험하고 나면 더 이상 말을 하기가 싫습니다. 차라리 말하지 않으면 무시당하는 기분은 들지 않으니 그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여자들은 입을 닫게 됩니다. (물론 모든 경우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겠죠.)
이처럼 ‘그림’이든 ‘언어’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현도구들은 불완전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상황’적인 것을 ‘언어’나 ‘그림’ 같은 단편적인 것으로 표현하려 하니 완벽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오해와 편견 속에서 살아가게 되나 봅니다.

교회에서 하는 어떤 모임이든 빼놓지 않고 꼭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제목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제목이라고 내놓은 것이 거의 비슷합니다. 청년들은 대부분 취업과 결혼에 대한 내용이 많고 각 목장에서는 남편 일 잘 되는 것과 아이들 잘 자라는 것, 또 가족 건강이 가장 많습니다. 또 이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기도제목은 가족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정말 간절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런 내용이 가장 만만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실은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타인에게 자기 사연을 자세히 늘어놓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언어’라는 그릇에 자신을 완벽히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오해하지 않을만한 비슷비슷한 기도제목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극단적으로 어차피 아무도 진실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테니 기도제목을 나누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중보기도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싫어하겠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타인에게 나를 완벽하게 표현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나를 꽁꽁 숨겨두는 것이 더 좋은 걸까? 정말 ‘나’를 표현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일까?” 하고 말이죠.

몇 년 전 학교에서 상담실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먼저 상담을 받겠다고 찾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상담실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끌려온 학생들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와 싸우고 상담실에 끌려온 학생들이 있다고 해봅시다. 학생들이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상담실에 혼자 두고 사건의 경위를 쓰게 하는 것입니다. (둘이 붙여놓으면 큰일 납니다.) 금방 싸워서 감정이 끓어 넘치기도 하고 쓰는 것도 귀찮아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성의 없는 짤막한 글을 써 옵니다. 그럼 그냥 조용히 더 구체적으로 써오라고 말하며 돌려줍니다. 그런 식으로 두세 번 하다보면 분량이 많은 경위서가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량만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감정도 조금 누그러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학생은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상황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되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머릿속에서 뒤엉켜 있던 분하고 억울한 감정들이 글을 쓰는 행위에 의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학생에게 경위서를 쓰라고 하는 이유는 교사가 그 글을 읽기위해서가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기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앞서 말한 ‘기도제목 나누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해보겠습니다. 보통 말하는 기도제목에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간절하고 필요한 내용, 즉 ‘결핍’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제목을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드러내는 시간이며, 다시 말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용기’가 발휘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자기를 완전히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다 보면 온전히 자기 삶에 직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즉 기도제목을 나누는 그 시간은 자기 자신과 직면하는 용기를 키우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또 문제를 마음에 담아두기만 할 때 그 문제는 그저 막연한 두려움일 뿐이며 그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언어’라는 도구로 표현해 내는 순간 막연했던 문제 상황이 구체적인 윤곽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문제를 확인하면 그리 심각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도 있고, 또 심각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떠오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앞서 말한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발휘된 ‘용기’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제목을 이야기할 때 의미 없이 수다만 떤다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수다를 통해 어려운 삶을 구체화시켜 떨쳐낼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합니다. 남들이 ‘수다’라고 생각할 정도면 얼마나 구체적으로 자기의 부족함을 이야기했겠습니까? 그러니 기도제목을 나누는 그 자체만으로 전혀 의미 없는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중보기도모임을 회피하는 이유, 혹은 모임에 참석은 하면서도 정말 필요한 기도제목은 말하지 않고 겉도는 이야기만 하는 이유는 결국 타인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들추기 싫고 ‘언어’라는 표현의 도구가 불완전하여 오해를 받는 것이 싫기 때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나 자신을 보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실은 기도제목을 말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시선의 문제일 때가 더 많습니다.

철수가 울었던 이유는 ‘사랑’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기 힘들어서였습니다. 철수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엄마 앞에서 잘난 척하며 ‘사랑’에 대한 사전적 지식을 풀어놓을 수도 있었고, 너무 어려우면 무시하고 다음 단어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철수는 엄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물을 통해 철수와 엄마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분명 느꼈을 겁니다.
‘표현’은 타인과 나의 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표현’은 나 자신에게 더 큰 용기와 위로를 주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중보기도에 대해 그리도 강조하셨나봅니다. 아직은 모임 안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열어 보이는 것이 두렵고 힘들지 모르지만, 그렇게 조금씩 열어 가다보면 분명 순수한 자기 자신과 만나는 그 순간이 오게 될 것입니다.

 
by 이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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