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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현 3-천천히 연습하기
작성자 : ccmlove (ccmlove) 작성일 : 2010-03-02 

‘말을 많이 하면 공허해 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다 드러내면 나만 손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표현’ 안에 진정한 상처를 담아낸다면 절대 공허하지도 않고 손해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상처에 기대어 자기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더 강인하고, 또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표현해야 좋은 표현이 될까요. 잘못된 표현은 나 자신과 타인에게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함께 ‘치유하는 표현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힘들 때 제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었던 책, 김형경의 ‘천 개의 공감’에서 말한 억압된 분노의 해독 방법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일단 내면의 상처를 그대로 두는 것은 무서운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상처가 안으로 곪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나 행동이 느려지게 됩니다. 더 심해지면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고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이유 없이 사람들이 미워지고 작은 일에 화를 냅니다. 아니, 작은 일도 아닌 것에 화를 낸다고 하는 편이 맞겠죠. 이렇게 예민한 성격이 되니 친구나 가족과 같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남게 되면 외롭다고 느껴지고 그 외로움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게 됩니다. 결국 내면의 상처는 가깝게는 주위 사람들, 더 깊어지면 이 세상 모두에 대한 분노로 변하게 됩니다. 상처가 분노로 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가 완전히 풀릴 때까지는 꽤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천 개의 공감’에서는 일단 분노가 쌓여 있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고 합니다. 무조건 덮어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겠죠. 오히려 화를 내고 화가 났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그 자체가 분노를 인정한 다는 말이고, 또 인정하는 그 자체만으로 분노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의미인  듯싶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작업을 의식적으로 행하면 더 좋은데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은 방법으로 ‘자신에게 표현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떠오르는 기억이나 느낌들을 세세하게 적어놓는 겁니다. 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기도수첩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나에게 표현하는 것이니 세상의 윤리나 도덕적인 면으로 거짓 치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착한 척, 다 포용하는 척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기록을 하다 보면 상처와 분노가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담고 있는 것과 다르게 구체적 실체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럼 갑자기 화가 나고 흥분할 수도 있고 때로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글로 기록할 때처럼 하나님 앞에서 통성 기도할 때도 이런 반응이 나타납니다. 조용히 마음으로 기도할 때와 다르게 내 목소리로 크게 하나님께 고백할 때 하나님만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게 아니고 우리 자신도 그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상처와 분노가 구체적으로 내게 살아서 다가오기 때문에 그렇게 엉엉 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의 표현들은 결코 의미 없고 헛된 것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표현을 하고 풀어내야 내 마음에 분노가 고여서 썩지 않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요하고 잔잔한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가 내면의 묵은 분노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신과 타인까지 해치는 사람들이 많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표현하기의 단계가 지나면 ‘타인에게 표현하기’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잘 하는 형제·자매와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쉽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교회 안에서 목회자나 리더와 함께 하는 정기적인 모임이 있으니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왜 성경에 그토록 함께 모여 기도에 힘쓰라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고독한 존재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위해 고민하는 것으로 머물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관계’ 속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교회 내의 모임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리더들은 팀원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을 갖지 말고 그냥 묵묵히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기만 하세요. 하나님이 잘 했다 칭찬해주실 겁니다.

  그런데 기도제목을 나눌 때 잘못 표현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 때로는 너무 착한 엄마들이 남편 건강이 안 좋은 것도 내 탓이고 아이가 공부 못 하는 것도 내 탓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본인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봅니다. “내 탓이다.”라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는 자기 회피 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어려움이 있으면 실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아이가 아파서 오히려 내가 피곤하다. 내가 지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자기 탓을 하지도 않았고 힘든 이유를 구체적으로 언급)” 혹은 “우리 집 경제가 어려운데 이러이러한 일을 하려고 하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막연한 인도하심을 구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도움을 청함)”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더 좋겠습니다. 얼마 전 목사님 설교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님이 선을 이루시는 방법은 다양하고, 자기 탓이라고 자책하는 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 일들이 현재의 고통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본인의 책임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특별하거나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 자리 잡은 보편적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와 분노가 객관화, 보편화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현실에서 표현하기’ 단계입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한 것은 다 연습입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자신의 마음을 구체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면,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자신이 당한 부당한 일에 대해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요령이 생길 것입니다. 솔직히 살면서 자신의 욕망을 접은 채 관대한 척 양보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을 참아 넘긴 적이 많았을 겁니다. 혹은 불공평한 일을 당하면서도 항의하는 방법을 몰라 답답함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 수가 없어서 애가 타는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자신을 무시하는 직장 선배를 자판기 옆으로 초대하여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적대감 없이 “회사는 제게 소중한 직장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말씀을 삼가주세요.”라고 말하는 여유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차근차근 표현하는 연습을 하면 서로 마음 상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쉽게 조절해낼 수 있습니다.

  내가 실수해서 직장 상사나 선배에게 꾸지람을 듣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으로 마음이 잠깐 상할 수는 있지만 원인이 분명하니 마음에 크게 담고 있으면 안 되겠죠. 그러나 이유 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분명 화를 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화가 났으면 화가 난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없는 자기 잘못을 굳이 만들어서 다 내 탓이려니 하고 덮어두면 안 됩니다. 분노를 묵혀두면 오히려 부패해서 그릇된 방향으로 터질 수 있습니다. 상처를 받았으면 아직 그 상처가 커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을 해소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느냐 겠죠. 마치 불을 뿜어내듯이 그 분노를 터뜨리면 일이 걷잡을 수가 없어집니다. 그럴 때 ‘현실에서 부당함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 힘이 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연습해 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솔직히 현실에서 내 감정을 여유 있게 표현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죠. 하지만 실수하고 깨지더라도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아나가면 누구든지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하게 유지시킬 수 있을 겁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시도하고 연습해 보세요. 작가 김형경은 책에서 “궁극적으로 ‘분노해도 괜찮다’는 단계에 도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받은 상처를 무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요새는 ‘나쁜 여자 되기’라는 말도 있던데, 여기서 ‘나쁜’이라는 문맥상 의미는 자기주장이나 감정 표현을 확실하게 하는 것인 듯합니다. 이것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특히 직장에서처럼 친분관계보다 공적 관계가 더 중요한 곳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태도가 직장 생활을 원활하게 해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다 들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요즘 말하는 ‘나쁜 남자’라는 의미의 ‘나쁜’은 전혀 상반된 의미입니다. 결코 ‘나쁜 남자’가 되려고 한다든가 그런 남자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표현하기’ 단계의 구체적 내용을 재미있는 문학 작품의 표현을 통해서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by 이수미 _ 200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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